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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

by shurii 2024. 1. 12.

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저 | 예담 | 2016년 01월 26일  

오랜만의 이름이다. 장은진처럼 백영옥. 예전 이름이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멀어진 사이 계속 쓰고 있었구나. 절판된 것 같은데 좋은 작품이다. 백영옥이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풀어 쓰는 사람이었나. 다시 새긴다.



첫문장
* 집은 세 겹으로 잠겨 있었다.

밑줄긋기

*
나는 ‘행운, 복’ 같은 떠돌듯 부유하는 말들을 언제나 ‘노력, 의지‘ 같은 땅에 뿌리박힌 듯 단단한 말들로 치환시키며 살았다. <2 마리>

*
어째서 어떤 사람에겐 '살다' '즐기다'로 수렴되는 삶이 어떤 사람에겐 '견디다'가 되어야 할까. '행복하다'는 말은 '운이 좋았다'라는 말로 바꿔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운이 좋았다'라는 말 앞에는 '지금까지는!'이란 말이 첨언 되어야겠지만. 바로 직전까지 '나는 정말 행복하다'라고 외치던 사람이 달려오는 차에 한쪽 다리를 잃는다면, 그는 여전히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 마리> 34%

*
어떤 날은 폭언과 매로 사랑했고, 어떤 날은 커다란 선물과 포옹으로 사랑했지만, 그것이 일관성 없이 불완전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넘치거나 모자라는 게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변해야 했다. 그것이 내겐 '철이 든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였다. <2 마리> 34%

*
"마리, 결혼은 서로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야. 극장에 가든, 쇼핑을 나가든, 여행을 가든 언제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리란 걸 아는 거."
"돌아오는 거?"
나는 엄마의 말을 반문했다.
"그래.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기 싫어도 또다시 돌아오는 게 결혼이야."
그때, 엄마가 나를 너무 꽉 끌어안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하다'는 말은 결혼에 있어, 조금도 끔찍한 말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라는 것 말이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끝내 알아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결핍 안에서 공기가 되어 서로를 죽이지 않고 살아 숨쉬게 해야 한다.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는 건 중요하고 사소한 수없는 약속들을 지켰다는 증거였다. 그것은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다. 누군가 그것을 '의리로 산다'는 말로 아무리 비꼬아 말해도, 나는 어떤 단서도 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이란 정말 그런 것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2 마리>  57%


*
열정이 사라지고 난 후, 다시 찾아오는 사랑의 이야기에는 어떤 것들이 놓여 있을까. 그 끝이 결국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 나는 일이 되는 걸까. 그것을 완성해낸 사람만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만 들 수 있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그것 이외의 것들은 그저 너무나 하찮은 변 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이별을 정당화할 순 없다.
사랑하지 않는단 말은 가슴 아프지만 죄가 될 수 없다. 다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벌이는 희망고문과 거짓말이 죄가 될 뿐이다. 최악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사라지거 나 떠나는 사람들이다.  <3 수영> 78%

*
나는 잠시 그의 사진이 실린 인터넷 기사와 블로그들의 긴 목록을 바라봤다.
그 길고 긴 목록들은 불안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닮아 있었다. 또한 예견된 실패를 앞둔 많은 예술가들의 초상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경력을 과시하는 것도, 진화하고 있다고 주문을 외우는 것도 두렵기 때문인 것이다. <3 수영> 85%

*
" 결혼이란 건, 말하자면 앞으로 저 사람이 네게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온갖 고통을 주게 될 텐데, 그 사람이 주는 다양한 고통과 상처를 네가 참아낼 수 있는지, 그런 고통을 참아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 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될 거야. 살아가는 동안 상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어. 하지만 누가 주는 상처를 견딜 것인가는 최소한 네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해야만 해. 그러니까 이 남자가 주는 고통이라면 견디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해. 그러면 최소한 덜 불행할거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은, 정말로 사랑하 지 않는 남자라면, 때때로 견디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 될 거란 얘기야." <3 수영> 86%

*
열아홉의 내가 처음 봤던 축구장의 낯선 풍경들 속엔, 골을 넣은 선수가 아니라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카메라 밖으로 서둘러 달아나는 골키 퍼와 공을 막지 못해 자책하는 상대편 수비수의 일그러진 얼굴이 있었다. 카메라 속으로 뛰어 들어가 괴성을 지르며 열광하는 선수들 뒤로 펼쳐지는 누군가의 괴로운 얼굴 말이다.<3 수영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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