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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by shurii 2024. 2. 4.

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저 | 한겨레출판 | 2022년 09월 30일  

책을 시작 하자마자 작가의 말부터 나와서 당황했다. 보통 맨 뒷장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문장이.. 와우. 호흡이 참 좋다.




첫문장
* 언제나 고통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작가의 말>

밑줄긋기
*  정확한 언어가 아름다운 언어라 생각해왔다. 무엇이 정확함을 만드는가. 정확함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에 정답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언어로 옮길 때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타인의 언어로 전달될 때 의도치 않은 오역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영원히 내가 닿고 싶은 아름답고 정확한 언어의 세계에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끝내 완수되지 못할 것이다.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바람도 불가능할 것이다. 옳지 않은 권력의 말에 저항하겠다는 의지는 종종 부족한 용기로 꺾일 것이다. 완벽하게 윤리적이고 올바른 언어의 길을 찾는 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그런 길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어서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지기 위해 쓴다. 권력의 말을 부 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길 원한다. 6% <작가의 말>

* 인간관계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억울함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 이를 밝히려 할수록 자기 억울함에만 집중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하고 살라는 뜻이 아니다, 밝히려 하지 않아도 다 밝혀지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는 흔한 말이다. 그다음이 중요하다. "단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내 억울함을 밝히지 않아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억울함을 당할 일이 생긴다면 이때는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억울한 일을 겪도록 돕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자기연민에 휩싸인 자와 투쟁하는 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37% <억울함>

* ’광주 사태‘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사건의 명명이 바뀌는 공안에도 그때 거기 있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40% <증언>

* 이 사회는 '국가의 위상'이나 '선진국'이란 말을 좋아하지만 인권에 있어서는 '선진국'을 지향하지 않는다. 정치는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과거의 '나중'이었다. 인권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차별은 의견이 아니다. 49% <인권>

* 결혼제도 밖에서 태어난 사람과 결혼제도 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구별하는 혼외자, 혼중자의 개념도 사라지고 그냥 '자녀'로만 표기하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20~30대의 절반 이상은 혼인하지 않고 출산할 수 있다고 답했다. 현실은 이미 많이 변하고 있는데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을 때,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정상'이라고 우기는 것이 반드시 '정상'은 아니다. 62% <여성>

* 부패 검찰이라고 해야 할 것을 스폰서 문화라 순화해 표현한다. 여전히 다수의 언론은 성폭력을 '몹쓸 짓'이라는 완곡어법으로 얼버무린다. 미성년자 성착취를 '원조교제'라 부르고, 여성 성착취를 '스폰서'라 부름으로써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남성권력이 아니라 성을 이용해 돈을 받아내는 여성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힘이 윤리를 지배한다. 68% <여성 노동자>

* 중세 시대 수녀들에게 금지하는 3D는 춤Dance, 화려한 옷Dress 그리고 개Dog였다. 몸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춤, 몸에 걸친 화려한 옷과 더불어 귀여운 개는 세속적 욕망을 자극한다고 본 것이다. 근대에 유럽인들의 사치품 중 하나도 이국적인 개였다. 세속 인간에게는 개조차 과시의 수단이었다. 73% <동물>

* 동물 보호소처럼, 외국인 보호소는 보호소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보호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이름이다. 74% <동물>

* 유승민은 '개를 식용으로'라고 말하지만 윤석열은 '식용 개'라고 말했다. 단어의 앞뒤 순서가 바뀌었을 뿐인데, '개 식용'과 '식용 개' 사이에는 많은 거리가 있다. 개를 식용하는 인간의 행위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식용 목적인 개를 구별해버리며 논의를 중단시킨다. 가족과 식용을 구별하는 것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한 생명의 존재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상화다. '다른 종'의 고통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76% <동물>

* 윤석열이 열차에서 구두를 신은 발을 앞좌석 위로 편하게 쭉 뻗고 있는 모습이 전하는 불쾌감은 위생적 차원 때문만은 아니다. 그 눈치 보지 않는 몸이 전하는 권력 때문이다. 78% <몸>

* 그러나 무식한 사람이 무식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굉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그 정도로 무식해도 아무 상관 없이 살 수 있는 권력자였다는 뜻이다. 88% <권력>

* '처음 듣는 말'이 무엇인지는 때로 그 사람의 위치를 보여준다. 2017년 자유 한국당에서 마련한 한 토론회에서 당시 홍준표 대표는 "젠더 폭력이라고 하는 게 선뜻 이해가 안 가는데, 예를 들어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설명을 들은 뒤에도 그는 "처음 듣는 말"이라며 "젠더가 뭔가"라고 재차 물었다. 누군가에게는 삶에 직결된 문제이기에 이 언어가 들리지만, 누군가의 귀에는 삶의 주파수가 맏지 않아 들리지 않는다. 89% <권력>

* 나는 듣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그는 오직 말하는 존재이다. 그가 기피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소통이다. 그의 말은 설명하거나 설득하거나 사과하는 말이 아니라 지배하는 말이다. 91% <권력>

* 고통을 외면한 채 우리는 아름다움을 맞이할 수 없다. 타자의 고통을 마주하고 사랑과 아름다움이 주는 힘과 그것의 정치성에 대한 무한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세계를 아름다움으로 이끌 것이다. 아름다움은 살아가는 모든 것에게 애쓰는 마음이며 동시에 죽어간 모든 것에게 애도를 잃지 않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는 연결된다. 93%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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