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 다
구의 증명
shurii
2023. 10. 28. 23:18
구의 증명
최진영 저 | 은행나무 | 2015년 03월 30일
이번에는 완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느 시점이 지나니 술술이구나.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의미를 다 담고 있다. 잘 쓰는 작가구나.
사는 건 힘들고 왜 힘들어야 하는 거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담이나 구나.
첫문장
* 천 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밑줄긋기
* 담이 왜 내 게 다가왔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담이 다가왔는지 내가 다가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왜'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누나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가끔 허공에 대고 물었다. 왜, 대체 왜. 당신과 내가 어째서. 남녀가 만나는데 타이밍 말고 무슨 이유가 더 있느냐고 누나는 말했다. 그랬다. 우리는 남녀 사이였다. 담과 나보다 누나와 나 사이가 그런 정의에 훨씬 어울렸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유가 필요했는데,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게 과연 사랑일까.
* 나는 담에게 들을 과거가 없었다. 함께 겪었으니까. 겪을 때마다 감정을 공유했으니까. 그때 우리 열한 살 여름에 개천에서 같이 피라미 잡다가, 라고 담이 얘기를 꺼내면, 너 신발 한 짝 떠내려가서 그거 잡는다고 우리 둘 다 죽을 뻔했을 때? 라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설명 없이도 대화는 성큼성큼 나아갔고 감정은 절로 드러나 꾸밀 필요 없었다. 침묵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도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