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 나와 당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11개의 시선
오후 저 | 사우 | 2020년 02월 27일
밑줄긋기
* 백인 캐시어스 클레이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는 인종 차별주의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노예를 해방했 다.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노예를 가진, 그래서 노예를 해방할 힘이 있는 백인이었다. 그는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시혜를 베풀 수 있었다. 흑인은 백인이 시혜를 베풀어야 동등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흑인과 백인은 결코 동등해질 수 없다).
알리의 말은 정확하다. 그 이름은 노예의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는 훌륭 한 주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그 이름을 붙여줬다. 알리가 거부한 것은 단순히 주인의 이름이 아니다. 사회가 구축한 시스템이다. <02 정의를 외치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
* 우리의 삶은 히스토리가 아니라 해프닝이다. 순간일 뿐이다. 역사에 기록되든 아니든 상관없다. 세상을 바꾸는 건, 기록된 역사가 아니 라 한순간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우리 인생에 스크롤은 필요 없다.
우리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 <04 역할 놀이를 끝낼 때>
* 적당한 보상만 주어진다면, 모든 것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05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 모든 시스템이 나대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건 슬픈 일이다. 적극 적인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과잉 대표되고 있고, 소심한 사람의(소극적인 사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그들을 뭐라 부르든) 의견은 무시된다. <09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
* 나는 노조 활동에 호의적이지만, 노조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그들은 이러나저러나 결국 회사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평소에 아무리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운다 해도 회사에 위기가 오면, 노동자를 감축하는 구조조정까지도 스스로 받아들인다. 보수 언론에서는 마치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하는 것처럼 떠들지만, 노조 때문에 망하는 회사는 없다. 노동자는 이미 자신의 업무밖에 할 수 없게 길들었다. 노동자는 회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회사를 망하게 한다고?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11 포기하지 않는 용기>
*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당신의 인생에 당연한 건 없다.
선을 넘자.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에필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