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의 시간
불펜의 시간
김유원 저 | 한겨레출판 | 2021년 07월 15일
아.. 잘 쓰는 사람은 참 많구나.
이 정도의 호흡의 문장으로 이 정도의 이야기 흐름으로 정말 딱 알맞다.
”쓰게 되어서 기쁘다“는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조차 딱 알맞다. 적정을 지키는 문장이다.
첫문장
* “이 주임은 누구처럼 살고 싶어?” 박 부장이 준삼에게 물었다.
밑줄긋기
*
기사를 쓰는 실력이 는다는 감각이, 누군가 읽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회수가 기현을 나아가게 했다. 동료의 인정은 길 가다 줍는 동전이었다. 주워도 그만, 줍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10원짜리 동전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6. 생존주의>
*
예외적으로 살 자신이 없고, 독보적으로 살 자신도 없었기에 준삼은 사회가 제시하는 들에 자신을 맞췄다. 공부하고, 대학에 가고, 회사에 취직했다. 선생님, 교수님, 사장님 중 누구의 지시도 거부하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살면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될 것이다. 연봉은 점점 높아질 것이고, 여자와 결혼해 아이도 낳게 될 것이다. 뻔한 삶이었다.
준삼은 뻔함이 주는 안정감을 가능한 한 오래 누리고 싶었다. 문제는 악취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구린내를 맡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썩은 내가 날 줄은 몰랐다. 예측 범위를 뛰어넘는 냄새였다. 월급이 주는 안정을 누리려면 월급과 세트로 묶인 악취와 모욕도 견뎌야 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악취는 독해질 것이고, 감내해야 하는 모욕의 양도 많아질 것이다. 어느 순간엔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욕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건 또 얼마나 끔찍할까?
하지만 준삼은 그 모든 걸 잘 견뎌볼 작정이었다.
누가 나에게 예측할 수 없는 기쁨과 예정된 모욕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예정된 모욕을 선택할 것이다. 눈물을 흘린다 해도 예측 가능한 편이 좋다. 휴가가 끝나면 갈 곳이 정해져 있는 삶이 좋다. 혁오가 볼넷을 주고도 만족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알고 싶다. 하지만 두렵다. 그 이유가 내 삶을 초라하게 만들까 봐 두렵다. 그러 니 모르자. TV로만 보고 펜스 너머로만 보자. 혁오가 사는 세계의 작동 원리를 모른 다 해도 나의 세계를 사는 덴 아무 문제 없다. <11. 여름휴가>
* 무너지지 않고 나아간 세 인물 덕분에 내 안에도, 그리고 누구에게나 눈 둘 곳이 있단 걸 알게 되었다. <작가의 말>
